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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Quotation(인용)

by 글샘박선생 2016. 6. 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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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이 한창 귀양살이 하느라 강진에 있을 때, 흑산도에서 귀양살던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고 받았습니다. 고경(古經)에 대한 높고 깊은 학문적 토론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어떤 때는 마음속 깊은 내막을 주고받으면서 유배의 시름을 잊으려 했던 편지 내용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국가에서 대사면령을 내려 오대범죄(五大犯罪)의 죄인들까지 모두 석방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탐관오리는 물론 살인강도범까지를 다 풀어주고도, 귀양살던 다산 형제에게는 전혀 언급도 없었고 혜택도 미치지 않은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견디기 어려운 비애와 고통은 그런데에 있었습니다. 남들은 기뻐하는데 자신들만은 슬퍼해야 하고, 자신들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남들은 자기들을 까맣게 잊을 경우, 상쇄할 수 없는 비애와 고통은 참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심사입니다. 그럴 무렵의 형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 한 통은 인간의 심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뒤얽혀 있는가를 밝혀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간다해도 무슨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하늘이 이곳 다산(茶山:지명)을 제가 죽어서 묻힐 땅으로 정해주었고, 보암산(다산 근처의 산 이름) 자락의 몇 뙈기 밭을 식읍지로 주었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아이들의 울음소리, 아낙네의 탄식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니, 이처럼 복이 후하고 지위가 높은데 이런 깨끗한 신선세계를 버리고 네 겹으로 둘러싸인 아비지옥의 세계에다 몸을 던지려 하니 천하에 이렇게 어리석은 사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사면령이 내려 돌아가게 해주어도 가고 싶지 않노라는 마음속을 내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억지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다짐한 것이 정말 이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돌아가고픈 심정도 사라진 적이 없으니 사람의 본성이 본래 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코 간음이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아내나 첩을 도적질하려 하고, 분명코 생계가 파탄남을 알면서도 더러는 마작이나 돈내기 놀음을 하는 수가 있듯이, 저의 돌아가고픈 마음도 이런 유의 심정이지 어찌 본심이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교착되면서 가고 싶은 마음, 가지 않고 신선세계에서 『주역』연구와 『악경(樂經)』연구 등의 학문연구에 침잠하고 싶었던 본 마음은 또 그것대로 남아있노라는 마음을 토로했다고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산 같은 대학자이자 대철인이었지만, 마음의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었음이 사실이었으니,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 귀하고 부하게 살고 싶은 심정, 그런 마음을 지녔으면서도 막힌 현실 속에서 그렇게 할 수 없는 역경에 처해 있을 때, 그런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바로 인간 삶의 성패가 걸려 있지 않을까요. 귀양이 풀려 사랑스러운 처자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그런 비애와 고통을 독서와 저술로 극복해냈기 때문에 오늘의 다산으로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런 수준에 턱 없게 미치지 못하는 범인들의 마음이 오히려 가엽게만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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