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들 26

덜어내기

별 생각없이 그때그때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책을 사서 읽고 모으고 쌓아놓는 것은 학습된, 혹은 버릇이 되어버린 듯 하다. 아직 플래티넘 등급인 걸 보니 마지막으로 책을 산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말 어느 시점 이후 새해 들어서 현재까지 최대한 장바구니에만 수시로 쌓고 구입은 애써 미루고 있다. 방학이기도 하고, 또, 상대적으로 적립해 놓거나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한 상태에서 빚을 져서까지 책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새해 결심까지는 아니지만, 마음 먹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어쨌든 당분간 더 이상 제대로 읽지 않을 책을 가보인양 쌓아두기보다 처분할 것은 하고 짐을 줄일 요량이다. 몸처럼..무겁게 불필요한 살덩이까지 매고 다니는 것같이 내 머리에 온전히 담지도 못할 거면서 무언..

잡설들 2018.01.07

1987

요즘 영화로 개봉된 1987년 그 시절, 난 고등학교에서 집을 오가는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따금씩 소위 당시 용어로 '데모'를 하는 학교 바로 옆 A모 대학 옆을 위태롭게 다니고 있었다. 그시절 오히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차려, 경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후일 군대에 가서 하게 된 내무반의 점호 같이 반장이 일괄 통제하던 학교였다. 지금 내 은사님들과 친구, 선후배들이 페친으로 얽혀 계시므로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 참 쑥스럽기 그지없는 이야기지만, 당시의 체육복과 하계 교복을 기억해 보면 지금 후배들의 그것은 상전벽해겠지만, 그러고 다녔다는게 참 신기했다(아,하계 교복은 요즘도 유명하긴 하다). 국민학교 때는 온통 교실 밖이 때려잡자 공산당 무찌르자 김일성에서 그나마 얌전해진 꼴이었으니...

잡설들 2018.01.01

만남과 헤어짐의 모순

만남의 설렘과 헤어짐의 아쉬움은 늘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것이든 의미가 없는 것은 없는데, 어느 시점에 숙명으로 다가온 학교라는 사회에서 시나브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영원할 줄 알았던 인연의 헤어짐을 불쑥 머리를 들고 준비하게 되어야 하는 허망함과 아쉬움도 있다. 그러다 문득 그 본판인 인생의 과정에도 마찬가지의 양상이 존재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 한다. 참, 얼마나 모순된 인간인가.

잡설들 2017.12.09

12월 1일부터 9일까지 잡설

9월에서 10월까지는 뭐 대단하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좀 걸어다닌다고 유세를 떨고 다녔다. 11월이 되자 논문심사에 영자신문 30여꼭지 (10*3)윤문수정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로 한 협력수업 지도안과 자료들을 공문화시킨다고 수업에 뭐에 정신이 없는데, 운동을 바쁘다고 놓아버리니 조금만 일하면 쉬이 피곤해져서 결국 월말이 왔고 간신히 손가락을 먼저 홈베이스에 터치했다. 이제 두 점 차 남은 야구경기 같다. 시험문제, 과제채점, 성적처리야 당연하고, 이번학기는 좀 뜸하네 했더니 바로 다음날 쳐들어 온 논문 세 개의 심사.. 계획을, 정리를 할 틈이 없는 바쁨은 그나마 현실을 보며 마주하는 불만들을 상쇄시킨다. 에효. 아침 예약인 줄 알고 그냥 들른 정기방문처는 오후 네시 예약이었단다. 정신도..없다.ㅠㅠ..

잡설들 2017.12.09

깨몽

아직까지도 착각하고 있는게, 대통령이 뽑아놓으면 다 결정하고, 다 만들고, 평화 만들어내고, 경제 팍팍 살리고 무슨 가제트 형사 모자에 있는 잡다한 도구의 종합판인 줄 아나보네. 혼자 나라를 운영하나? 그런데 현실은 도와줄 사람은 지켜만 보고 사양하고, 비판적 지지라는 미명하에 마지못해 지지한척하던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앞뒤 재지도 않고 비판나서고, 원래 반대쪽은 바보짓하다가 망신당한거 메꾸려고 이쪽에다 속사정포 쏴대고. 북한만 쏘는거 아니네. 지금 대통령하는 양반도 저러고 싶어서 그러나? 분위기도 안되고 위상도 안되니 힘든거지. 제동씨, 성주가서 위로하는 건 좋은데, 그것 좀 말 안되게 비교하면 강서구 장애학교 설립이나 마찬가지 꼬라지인거 아나?평등하고 장애가진 사람도 권리가 있다면, 남들이 뭐라건 행..

잡설들 2017.09.10

팔자, 운명

팔자라는게 있고, 다른 말로 하면 운명같은, 결정되고 방향이 정해진 (destiny, destined )것이라기 보다는 중요하고 치명적인 (fate, fatal) 삶의 과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장난같지만, 그 장난같은 운명에 울고 웃으며 오늘을 산다. 누가 알았겠는가. 엊그제는 십여년만에 그때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서로 세월의 흔적을 공유하며 인사를 나눴다.그이는 내 목소리를 먼저 기억했고, 난 습관처럼 그의 얼굴과 성을 기억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어떤 공간은 떠나도 흐릿한 기억뿐 아무리 열과 성을 다했어도 남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상황이 되고 미련을 갖게 되며 더더를 생각한다. 신기하고 얄궃은듯 싶으면서, 금요일 아침이 참 신묘하다. "사실은 우리가 가장 포기하기 힘들어했던 것..

잡설들 2017.09.08

국가중심주의 vs. 개인중심주의

친구의 페북 글에 "원정경기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나라가 우리말고 또 있을까?"라는 말을 보았다. 그래, 맞다. 국가대표다.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국가대표 이전에 한 개인이고, 선수다. 최근 배구의 김연경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야구 국가대표팀을 가지고 말이 많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 그것은 승리여야 하며, 나라가 그들을 어떻게 지원하든 말든 최선을 다해 국가 발전(?)에 공헌하고 이바지하여야 한다. 사실 좀 지겹진 않나 싶은 국가주의 우선관. 누가 대한민국에 살고파서 페북 친구신청 하듯 누르고 신청해서 팔로잉하고 팔로우를 하나? 그건 아니고, 그냥 그들이 운명인양 이 세상에 태어난 거다. 그러하니, 굳이 그것이 운명이고 숙명이라면..

잡설들 2017.09.06

무제

꼬리를 잘라내고 전진하는 도마뱀처럼 생은 툭툭 끊기며 간다 어떤 미련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끊어내고 죽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럼이 없나 한 몸의 사랑이 떠나듯 나를 떠나 보내고 한 몸의 기억이 잊히듯 나를 지우고 한 내가 썩고 또 한 내가 문드러지는 동안 잘라낸 자리마다 파문 같은 골이 진다 이 흉터들은 영혼에 대한 몸의 조공일까 거울을 보면 몸을 바꾼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언가 잘려나간 자리만 가만가만 만져보는 것이다 심장이 꽃처럼 한 잎 한 잎 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면 이렇게 단단히 아프진 않을 텐데 몸을 갈아입으면 또 한 마음이 자라느라 저리는 곳이 많다 잘라내도 살아지는 생은 얼마나 진저리쳐지는지 수억 광년을 살다 터져버리는 별들은 모르지 흉터가 무늬가 되는 이 긴긴 시간 동안 난 ..

잡설들 2017.09.02

공강, 논문심사, 객적은 생각.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 지난 주에 요청받은 논문심사 하나를 부지런히 마치고 보냈다. 논문심사의 번잡하고 귀찮음이 때때로 심사를 뒤틀리게 할 때도 있지만 아주 바쁘지 않은 한 거절하지 않고 하는 까닭은 나에게 남은 전공에 대한, 버텨온 공부와 학문에의 열의에 대한 최하의 예의같은 느낌이다. 참고문헌이 될 수도 있고. 이번 방학에도 오늘 보낸 것까지 서너개의 논문을 짬짬이 심사했다. 물론 내가 남의 글을 심사하고 평가할 깜이 되는가라는 조심스러움도 있고, 글쓰는데 겁이 난다는 부작용과 글쓰는 이에 대한 연민같은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한편, 어제 학술지 평가결과가 연구재단에서 나왔다. 솔직히 자꾸 등재지, 후보지 등으로 편을 가르고 지원을 핑계로 글쓰는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의 불편함이 싫다만, ..

잡설들 2017.08.29